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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반골이란다] - 딸에게 전하는 응원
“반골(反骨)이란, 뼈가 거꾸로 된 것을 말하며, 속뜻은 명령이나 권위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의미한다. 본인이 싫어하는 무언가를 마주했을때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생길법한 기질이며, 특히나 겉으로 반골 기질을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라면 더욱 겉과 속이 달라지는 이중인격적인 면모를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반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너의 할머니께서 하실 말씀이 아주 많으실거다. 무척이나 속상하셨던 일화가 있지.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너의 친할머니)께서 일을 좀 하시느라, 나의 외할머니(너의 증조할머니)께서 종종 집에 오셨단다. 돌봐주시고 먹을 것도 해주시고 숙제나 일기같은 것도 봐주셨지. 어느 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펼쳤는데, 부엌에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어.
“숙제 다 했으면, 이제 얼른 일기 써야지!”
아빠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면서 펼쳤던 일기장을 바로 덮었단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서 딴짓을 했지. 정말 웃기지 않니? 일기장까지 펼쳐놓고 날짜랑 날씨까지 적고 있었는데, 누군가 일기쓰라고 시켰다고 그 즉시 하려던 일을 멈추다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거 같은데, 그 나이부터 이렇게나 반골 기질이 심했단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날 밤 씩씩대며 일기장을 다시 펴고 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인 즉슨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외할머니가 일기쓰라고 시킨게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안 쓰고 버티다가 밤늦게 쓰고 있다”였어. 나중에 내 일기를 본 어머니는 그때 참 많이 속상하셨다고 얘기해주셨어.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던 아빠가 과연 원만한 사회 생활을 했을까? 물론 사회 부적응자라고 할만큼 교우 관계를 비롯한 사회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종종 힘든 순간들이 찾아왔단다. 본격적인 시련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였어. 사회 초년생 시절, 내 눈에는 부당한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런 일들 앞에서 “좋은게 좋은거지”, “일단 시키는대로 해보자.”하는 것은 젊고 혈기 넘쳤던 나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던 선택지였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극과 극이었지. 누군가에게는 “하..정말 말 안듣는 xx” 또 누군가에게는 “줏대있게 끝까지 밀어부치는 인간”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직장 상사들에게는 전자였어. 그렇게 몇년간의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는 마치 “불합리한 세상과 싸우는 외로운 쌈닭”이 되어,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단다. (물론 친구도 많이 만들었고) 그러다가 결국 지치는 순간이 왔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한계가 온 걸 느끼게 되더라.
“왜 이렇게 x신같이 일하지?”
“왜 이렇게 다들 타성에 젖어있지?”
“왜 다들 아무 말도 안하지? 내가 이상한건가?”
마침내 나는 한국 사회라는 곳을 ‘내게는 맞지 않는 곳’이라 멋대로 규정해버리고 유학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무모한 결정이었어. 해당 분야에 전문성도 별로 없고, 그 지역에는 아무 연고도 없고, 유학의 끝에는 그 어떤 것도 보장되어있지 않은데, 당시 인생 테크트리는 이미 상당히(결혼 + 직장생활 N년) 와버렸고... 그때 내가 내린 결정이 충분한 심사숙고의 결과인지, 충동적인 선택의 결과인지, 새로운 세상을 찾아 탈출구를 찾은건지, 단순히 지금의 현실이 너무 싫어서 도피를 한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아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던 때라, 설렘과 두려움을 반반씩 안고 모험을 시작했단다. 그 이후의 여정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여기에 전부 담을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말해 무수히 많은 가시밭길 속에 간간히 꽃길이 있는 험난한 행군이었어, 돌아보면 안쓰러움과 뿌듯함이 복잡미묘하게 섞여있는 것 같아. (당연하게도 힘든 유학생활 중 생긴 우리딸, 그리고 함께한 시간은 하늘이 엄마아빠한테 준 가장 큰 선물)
한국이라는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 찾아간 세계에서 느낀 좌절과 희망. 그리고 거기서의 도전과 실패, 성공. 어쩌면 이 경험을 통해 나의 반골 기질은 중요한 변화를 겪었던 것 같아. 지금도 주어진 현실이나 정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일방적인 명령이나 주입에 불복종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어. 이런 생각을 추가로 해보게 된거랄까?
“저 사람이 합당하지 않은 지시를 내리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러한 정보는 어디로부터 오는걸까? 누가 이러한 정보를 어떻게 유통시키고 있는 것일까?”
즉, 명령에 대해 본능적으로 드는 불쾌감을 조금은 누르고 어떤 맥락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자신감에 넘쳐 항해를 시작했으나, 수많은 풍랑과 암초를 만나 개고생하면서 “내 생각은 항상 틀릴 수 있는거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바뀐 것 같아.
특히 아빠가 그토록 바라던 불합리하지(해보이지) 않는 세상은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이 형성된 연유가 있는 것이고, 그토록 싫어했던 불합리해보이는 세상조차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게 정말 큰 수확이었지. 그때부터는 합당함과 불합당에 대해 매우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어.
“합당해보이지 않는 세상의 그 불합당함마저도 어떤 배경과 역사가 있는거구나. 합당함과 불합당함의 구분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표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구나.”
그래서 지금은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최대한 “건조하게” 인식하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어. 아무리 눈앞에 일어나는 일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잘못돼보이더라도 그 뒤에는 어떤 배경이 숨어있을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 어떤 권위적인 상사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지시를 내릴 때, 뉴스를 틀었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때, 커피 한잔 주문하려는데 일 못하는 직원이 너무 답답해 보일 때 등등 하루에도 몇번이나 킹받는 순간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무엇이 너로 하여금 너를 그렇게 만들었니?”라는 질문을 던지면 마음의 평점심도 잘 유지되고, 문제의 본질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 무엇보다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지면 “나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매일 부딪히는 문제들을 조금은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것 같고.
반골이란 단어의 그 유래는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얘기도 이쯤에서 하면 좋겠어.
“이와 유사한 용어는 마이페이스, 유아독존, 벽창우 등이 존재하지만 독선적이거나 고집이 세다는 의미보단 권력이나 명령에 반항한다는 쪽으로 자주 쓰이며, 옛날에는 역적에게 붙는 부정적인 단어였지만 후대에는 권위에 저항하거나 불복종한다는 중립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그 권위가 정당하지 않을 경우엔 오히려 반골이라는 말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투사'라는 찬사에 가깝게 쓰일 때도 있다.”
이처럼 반골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야. 오히려 좋은 점이 많을 수도 있어. 특히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나 주장, 심지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어떤 명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실제로 확인을 해보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지. 이건 반골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뛰어난 점이라고 말하고 싶어. 지금 세계가 파편화되고, 검열이 보편화되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억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그러한 능력이 더욱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아빠는 믿는다.
살면서 언젠가는 너가 가진 반골 기질에 대해 회의감이, 자괴감이, 우울감이 들 수도 있을거야.
“왜 남들은 별 문제없이 그렇다그렇다 넘어가서 편하게 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러지?”
한때 매일같이 내 머릿 속에서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란다. 행여라도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때 이 글이 너에게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가 가진 그 기질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게 아빠가 해주고 싶은 말이란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든 완전히 좋거나 완전히 나쁘거나,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악한 것은 없어. 반골 기질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나의 기질, 너의 기질 모두 그 자체는 중립적인거야. 어떤 상황과 결합되어 발현되느냐에 따라 너에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도, 그 반대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어. 그러니 항상 지금의 모습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앞으로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쌓으며 성공의 달콤한 과실도 누리고, 실패의 쓰디쓴 약도 먹어가며 한발한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여정에 아빠는 항상 함께 할테니 늘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지금의 시간을 재미있게, 행복하게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사랑해.
아빠가.
Published at
2023-08-09 03:22:20Event J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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